모든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블패의 신화를 거둔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병사들을 훈련하고 무기를 정비했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거북선은 임진왜란 발발 직전에 완성됐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 후 거북선을 건조하고 병사들을 훈련했다면 이순신 장군이 불패의 신화를 거둘 수 있었을까? 

전쟁 뿐 아니라 비지니스, 연구, 개발, 협력 등 모든 부문에서 준비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통일 준비를 얼마나 잘 하고 있을까? 특히 과학기술, IT 분야에서 남북 협력과 통일에 대한 준비가 잘 이뤄지고 있을까?

필자는 과학기술, IT 분야의 남북 협력과 통일 준비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연구도 전문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북이 협력하고 향후 표준화를 논의하고 통일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진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남북 협력이 제대로 되려면 소프트웨어(SW) 분야의 전문가가 북한 SW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통신장비, 무선, 네트워크, 보안, 데이터 등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북한 IT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필자가 북한 인공지능에 관해 취재한 적이 있다. 북한 인공지능 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기술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남한의 전문가들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부탁한 5명 중 2명은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2명은 북한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나머지 1명은 처음에는 모르겠다고 하다가 논문을 본 후 최신 인공지능 기술 동향과 비교해 설명해 줬다.

인공지능 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SW, 클라우드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북한 IT와 과학기술 영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른다고 피하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극히 일부 전문가들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북한의 SW가 어떻게 개발되는지, 어떤 네트워크 기술이 사용되는지 알수가 없다.

지금 상태가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향후 남북 협력이 활발해지고 통일이 논의될 때 상당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남북 통신 체계가 달라서 그것을 맞추기 위해 수천 억 원의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다. 남북 시스템, 소프트웨어(SW)에 호환성 문제가 생겨서 수백 억 원을 들여 다시 SW 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원격진료, 원격교육은 물론 공장 가동, 디지털 방송 등 다방면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제는 IT가 쓰이지 않는 영역이 없다. 이같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미리 연구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들을 탓하거나 그들의 선의만을 바라고 연구를 독촉할 수는 없다.

전국시대 맹상군이 좌천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수 천 명에 달하는 그의 식객들이 떠나갔다. 그런데 책사 풍훤의 도움으로 맹상군이 복직하자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맹상군은 돌아오는 사람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풍훤이 말렸다.  

풍훤이 말했다. "아침 시장에 가보면 사람들이 많아서 발디딜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녁 시장에 가보면 한산하고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침 시장을 좋아하고 저녁 시장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아침 시장에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있고 저녁 시장에 필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이치가 이렇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몰리고 없으면 떠납니다. 돌아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서는 안 됩니다."

전문가들이 북한 IT, 과학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그 분야가 주목받지 못하고 또 이득도 없기 때문이다.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또 주목받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전문가들이 몰리고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정부 정책이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마중물이 필요한 것이 북한 IT, 과학기술 연구와 인력 양성이다.

2019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이 14조8485억 원이었다. 필자는 이중 1%만이라도 북한 IT, 과학기술 분야에 활용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예산이 수십억원 수준이었다. 

1%면 1484억 원이다. 약 1500억 원에 달하는 돈이 많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데 1%의 예산도 쓸 수 없겠는가? 

이것은 남한의 남북 경협, 통일 준비를 위한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북한 인공지능 연구 및 인력양성, 남북 교류 등에 매년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면 분명히 북한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또 예산을 IT와 북한 융합과정에 투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려대 대학원에서 빅데이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북한학을 연계하도록 하고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또 동국대 IT 관련학과와 북한학과 교수, 박사 등이 공동 연구를 지원할 수도 있다.

예산으로 남북 SW 전문가들이 모여서 각자 기술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정기 교류 행사를 만들고 남북 IT 연구소, 기업 등의 상호 방문을 추진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다.  

북한 IT라고 하면 해킹, 보안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려된다면 1484억 원  중 10%인 148억 원을 북한 보안, 해킹 기술 연구 등에 쓰도록 하자. 이런 연구는 남한의 보안 역량을 강화해줄 것이다.

1484억 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이 된다면 2020년에는 과기정통부 예산의 0.2%인 296억 원을 투입하고 2021년에는 0.5% 그리고 2022년에는 1%로 점차 늘려갈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예산은 남북 협력, 통일 과정에서 시행착오로 인한 비용낭비를 줄이는 동시에 남한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만약 북미,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에 대한 제재가 완화된다면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북한과 협력에 나설 것이다. 그 때 남한은 이미 전문가들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더 빠르게 북한과 협력에 나설 수 있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후 연구를 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과기정통부 예산은 국민들의 세금이다. 1원도 소중하고 낭비없이 사용돼야 한다. 북한 IT, 과학기술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에 예산을 투입하기 위해 국민들의 동의와 전문가 의겸수렴이 필요할 것이다. 불필요하다는 의견에 대세라면 또 전문가들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자. 북한 IT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현재는 사는 우리는 물론 통일시대의 후손들 즉 미래를 위한 일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돈이 아깝다면 어떤 돈이 아깝지 않을까?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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