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가 뭘 안다고 참견을 하나? 자네는 빠지게"

필자가 대학 재학 시절 학교 행사에 참석했다가 한 교수에게 들었던 말이다. 사회, 문화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필자를 제외하고 참여한 교수, 학생들은 모두 문과 출신이었다. 당시 반쯤 농담으로 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기술을 천대하는 인식이 담겨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비단 과거 그 교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적폐가 자리잡고 있다. 정치나 사회, 경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과학기술, IT 등을 무시하는 것이다.

북한, 통일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북한, 통일 분야에서 정치, 경제, 안보 등을 공부, 연구한 전문가들이 중심이 돼 있다. 그들이 남북, 통일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과학기술, IT, 산업은 통일에서 부수적인 분야 속된 표현으로 사이드 메뉴처럼 구색맞추기로 다뤄지고 있다.

조만간 개최될 예정인 통일부의 행사가 이런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9월 3일 통일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9월 7일부터 9일까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2020 한반도국제평화포럼 원격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통일부, 2020 한반도국제평화포럼(KGFP) 원격 토론회 개최

이 행사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해 통일과 남북 관계, 국제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기술, IT는 빠졌다.

이 행사가 정치, 안보를 논의하는 자리인데 과학기술, IT가 빠졌다고 주장한다면 억지일 수 있다.

그러나 3일 간 토론회에서는 안보, 정치는 물론 재난, 인도적 지원, 인권, 교육, 정면돌파전, 평화경제, 농업, 산림, 철도, 관광 등에 대한 세션이 진행된다. 즉 북한과 관련된 최신 주제들이 전부 다뤄지는 것이다. 과학기술, IT만 빼고 말이다.

토론회에서 다뤄질 정치와 안보, 경제, 인권은 중요한 주제다. 한반도 미래를 논의할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육 역시 북한이 교육, 인재양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 농업, 산림, 관광도 북한이 관심이 높은 분야이고 철도는 한반도 미래 논의한다는 측면에서 다뤄야 할 내용이다.

이처럼 중요한 내용들 다뤄지는 토론회에서 과학기술, IT가 빠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넘어 허탈한 심정이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과학기술과 인재양성(교육)을 두 축으로 강조하고 있다. 과학기술중시정책은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정책이며 북한 로동당의 정책이기도 하다. 북한 “과학기술발전이 국가의 최대 중대사” 북한은 과학기술이 최대 국가 중대사이며 과학기술을 안 하겠다는 것은 혁명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토론회에서 다뤄질 정면돌파전은 지난해 12월 북한이 내세운 국가전략이다. 그런데 북한 정면돌파전의 열쇠가 과학기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 “정면돌파전 첫째도 둘째도 과학기술” 최근에는 정면돌파전 과제로 5G 기술 개발을 지시했다는 정황도 알려졌다. 북한 정면돌파전 과제에 5G 포함?...북한 5G 추진 확인

이와 함께 북한은 경제 정책을 수자경제(디지털 경제)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농업, 산림, 철도 분야에서도 IT 융합을 추진 중이다.

북한의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이며 정면돌파전의 열쇠라고 하는 과학기술, IT를 빼고 통일과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한다는 것은 코미디다.

북한에서 이번 토론회를 본다면 아마도 크게 웃을 것이다. 북한이 과학기술로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는 것도 모르면서 한반도 미래를 논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IT를 빼고 한반도 미래를 논의한다는 전문자들이 과연 진짜 북한, 통일 전문가들인지도 의아하다. 북한 언론 사설과 발표 내용만 읽어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니 말이다.

행여나 이번 토론회가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또 최근 정면돌파전 상황도 제대로 모른체 20~30년 전 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통일부도 전문가들도 그것이 편할 것이다. 과거에 알고 있는 내용을 사골국물 처럼 또 우려서 이야길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해외 전문가들을 초청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토론회 주제를 정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토론회 프로그램을 전부 확인한 결과 남북 산림 토론에 참여하는 7명, 철도 토론에 참여하는 6명 전부 한국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국내에 과학기술, IT 분야에 전문가가 6~7명도 없어서 세션을 못하는 것일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KICI) 등 기관에 전문가들이 있다. KT, SK텔레콤 등 민간 기업에도 전문가들이 있고 학계, 연구소에도 과학기술, IT 등을 연구하는 교수, 박사들이 있다.

과학, IT 소관 부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토론회에서 다뤄지는 교육은 교육부 소관이고, 농업은 농림부 소관이며, 철도는 국토교통부 소관이 아닌가?

통일부가 이번 토론회에 과학기술, IT 분야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의지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의지가 있었다면 유관 기관들과 논의하고 전문가들도 충분히 섭외할 수 있었다.

한반도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 과학기술, IT가 빠진 것에는 과학기술, IT 분야 관계자들의 잘못도 있다.

통일 문제에서 과학기술, IT 분야 기관과 전문가들이 중요성을 왜 인식시키지 못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점은 필자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글을 읽는 선비들 입장에서 통일과 한반도 미래에 장인들이 다루는 과학과 IT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필자에게 항의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북 협력과 통일 과정에서 통신과 네트워크 연결을 안 할 것인가?

IT를 이렇게 왕따시키면서 정작 남북 협력을 할 때는 IT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 KT, SK텔레콤 등에 투자하고 남북 협력에 나서라고 할 것인가?

북한에서 과학기술, IT 협력하자고 제안했을 때 누가 그것을 할 것이며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과학기술과 IT 분야는 그렇게 필요할 때 만 찾고 도움을 청해도 되는 어리숙한 호구가 아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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