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과 대비되는 인물이 원균이다.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원균에 대해 무능하고 시기심이 강한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원균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북한은 원균이 겁쟁이에 시기심이 강하고 태만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NK경제는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편찬한 조선대백과사전(스마트폰용) 중 '원균'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사전은 원균이 조선봉건왕조 시기의 무관으로 무과에 급제해 조산만호로 있을 때 변방의 오랑캐를 물리친 공으로 부령 부사가 됐으며 1592년 경상우수가가 됐다고 설명했다.

출처: 나무위키

사전은 "원균이 일본 침략자들이 쳐들어오자 싸워보지도 않고 겁부터 앞세워 싸움배와 전투 기재들을 모두 바다 속에 쳐넣고 수군을 해산시키는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리고 제 한 목숨만 부지해보려고 육지로 도망치려다가 전라수군과 힘을 합쳐 남해를 지켜야 한다는 옥포만호 이운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순신 장군과 연합해 싸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균이 겁쟁이로 자기 자신만 살려고 했으며 범죄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 사전은 이순신 장군이 3도수군통제사가 되고 원균이 그 휘하에 있게 되자 이순신 장군을 시기모함했다고 지적했다. 사전은 이순신 장군을 대신해 3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수군 강화에 전심해야 했으나 군무에 태만하다가 1597년 왜적의 재침입 때 칠천도 앞바다에서 패전하고 도망치다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정세를 바꿨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대비해 원균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종합대 “이순신 수군이 임진왜란 정세 전환”

북한 "유성룡 봉건제도 유지하려 왜적과 싸웠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 독자님들의 뉴스레터 신청(<-여기를 눌러 주세요)이 NK경제에 큰 힘이 됩니다.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NK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