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협력과 통일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남북 협력과 통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 보다 먼저 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의 주민들의 적대적인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필자는 남북 협력에 관심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남북이 어떻게 협력을 할지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후 다시 이야길하면서 그중 일부 사람들이 적대적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적대적 대상에는 단순히 북한 정부나 정치인 뿐 아니라 북한 전체도 포함돼 있었다.

필자는 이것이 오랜 기간 누적된 남북 적대감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은 6.25전쟁이라는 내전을 겪었고 이후 휴전 상태에서 많은 비극을 경험했다. 때문에 남북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적대적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적대적 인식이 과도하게 확장돼 서로를 악마, 괴물로 보고 적대 대상 역시 전체 국민들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과거 한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이유로 한국의 모든 국민들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똑같다고 인식하고 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N번방 사건이 있었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한국이 성범죄자들이 활개치는 나라이고 모든 한국 남자들이 성범죄자라고 비난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특정 인물, 특정 사건 등을 갖고 북한 전체를 인식해서 적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한 군인이 북한 군인과 교전을 했다고 해서 북한 유치원생들을 미워해야할까? 

물론 이는 남한만의 문제는 아니다. 북한 역시 선전매체들을 통해 남한을 비난하는 형태를 보면 별반 다르지 않다. 역시 한민족이다. 

우리는 적대적 인식의 대상이 누구이고 방향이 어디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필자는 전쟁을 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악마로 보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2019년 2월 북미 2차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총비서를 만났다.

그런데 베트남은 1960년대 미국과 전쟁을 했던 나라다. 그럼에도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필자는 일본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일본과 중국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잔인했던 중일 전쟁으로 싸웠던 사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은 일본에 관광을 가고,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에게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타국 간 전쟁과 내전은 다르다고 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내전인 남북 전쟁 후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고향으로 돌아가 대학 학장으로 근무했다. 전쟁에 승리한 후 북군의 군인들은 오히려 로버트 리 장군을 존경해서 그 대학으로 진학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우리 남과 북의 상황이었다면 로버트 리 장군은 북에서는 '반동', 남에서는 '빨갱이'로 몰려서 총살을 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을지도 모른다. 로버트 리를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잡혀가서 처벌받았을 것이다.

중국과 대만도 내전을 경험했고 현재도 관계가 좋지 않다. 그러나 서로를 악마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중국 베이징에 열린 국제 기자간담회를 갔을 때 대만 기자들이 참여해서 취재를 했다. 대만 타이베이에 여행을 갔을 때는 박물관을 방문한 중국인들을 봤다.

많은 나라들이 전쟁과 폭력을 경험했고 역사적인 아픔도 지니고 있다. 당연히 전쟁과 폭력에 대해서는 사과도, 반성도 필요하다. 또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서로를 증오하고 악마화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베트남과 미국, 중국과 일본, 중국과 대만이 서로를 악마라고 생각하며 담을 쌓고 타도와 말살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명한 것이다.

하물며 전쟁 중에도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킨 사례가 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아랍 살라딘은 영국 리처드 왕이 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의사와 약을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리처드 왕 역시 살라딘에게 예의를 갖췄다고 한다.

오히려 한민족인 우리는 예의도, 뭐도 없이 증오심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남과 북이었다면 살라딘은 적국의 수장에게 약을 보냈다고 욕을 먹을 것이며, 리처드 왕은 적과 내통했다고 조사를 받을 것이다. 둘 다 '반동', '빨갱이', '간첩'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증오하고 악마로 보는 것에는 집권세력, 정치인들의 잘못이 크다.    

영국의 작가 윌리엄 골딩이 쓴 소설 파리대왕에는 동굴 속 괴물이 나온다. 아이들은 동굴 속 괴물에 대한 공포를 바탕으로 섬에서 독재 정치를 펼친다. 그런데 사실 동굴에는 괴물이 없었다. 한 어른의 시체를 괴물로 오인한 것뿐이었다.

6.25전쟁 이후 남과 북의 정치인들 역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괴물이 필요했고 남과 북 주민들이 서로를 증오하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괴물도 악마도 아닌 그냥 사람일 뿐이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증오가 아니라 서로 화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소한 남한 주민들이 북한 주민들을 미워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한 선전 활동 중 상호 적대감을 부추기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끝없는 증오와 적대는 남과 북 서로를 힘들게 하고 결국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생각해보자. 미래 세대에게 증오심이 가득한 원수 수천만명을 남겨줄 것인지 아니면 협력할 수 있는 친구를 수천만명 남겨줄 것인지를.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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