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 새로운 냉장고가 나왔다며 집에서 사용하던 냉장고를 빼내고 신제품을 넣고 간다면 어떨까? 어떤 사람은 새로운 냉장고를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새로운 냉장고가 테스트를 위한 시제품이라면 당황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 시제품이 갑자기 작동을 멈춰 냉장고의 음식들이 상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왔을 때 그것을 테스트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무대 즉 테스트베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테스트베드 활용에는 선제 조건이 필요하다. 반드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신약을 개발한 후 신약을 복용할 사람들을 모집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고 동의를 거쳐 그들에게 약을 주는 것은 허용된다. 하지만 동의 없이 약을 주고 복용하라고 하면 그것은 범죄다.

최근 남북 협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는 북한을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첨단기술과 서비스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스마트시티, 헬스케어, 스마트팩토리,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등 국내에서 각종 규제로 묶여있는 것들을 북한에서 해보자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한 때는 그런 주장에 솔깃하기도 했고 일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하자는 것에 북한이 동의를 했는가? 북한의 의사도 파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테스트베드를 하겠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집에 갑자기 들어가서 냉장고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테스트베드를 운영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에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과 사회, 경제적 문제에 대한 분석을 늦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작용을 찾고 기술 발전과 사회적 대응 시간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테스트베드가 활용되고 있다.

테스트베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서 이해 관계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며,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범위를 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조치 없이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자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테스트베드 주장이 나온 것에는 배경이 있다. 북한에서 부족한 인프라나 서비스에 최신 기술을 적용해 중간 단계를 생략함으로써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각종 규제로 인해서 기술이 있지만 적용하지 못하는 국내 기업들이 북한에서 구현함으로써 국내 기업들도 좋고 북한도 최신 기술을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경우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뛰어 넘어 모바일 결제가 각광을 받았다. 현금을 많이 사용하는 일본에서도 최근 신용카드 등 인프라 보다는 바로 현금 결제에서 모바일 결제로 넘어가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다른 나라들에서 진행된 기술, 서비스 발전 과정을 보고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북한이 경제 발전에서 주장하는 '단 번 도약'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을 신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삼자는 주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북한이 낙후돼 있고 남한은 발전돼 있어서 기술을 제공해야 한다는 그릇된 선입관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술에는 그만큼 부작용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북한이 그런 부작용을 극복할 만큼 사회적, 경제적 경험이 쌓여있는지 우려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자율주행차 신기술을 적용했다가 사고가 났을 때 기업들이 배상을 하고 보험을 활용하거나 정부, 공공기관들이 대응을 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북한 사회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다.

또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반감이 커질 수 있다. 2018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자율주행차에 탑승했던 북한 인사는 "우리가 실험동물 된 셈"이라고 농담을 했다. 북한 사람들이 신기술 적용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알려진다면 농담만 하고 지나갈 수 있을까? 협력에는 신뢰가 중요하다.

때문에 단순히 북한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 남한이 북한을 첨단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삼겠다는 전략을 세우자고 주장한다고 해서 북한이 그것을 받아들일 의무나 이유가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해야할 것은 남북이 앞으로 어떻게 협력하고 나아갈지 논의를 하는 것이다.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를 하면서 남북이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렇게 쌍방 간 협력을 논의하면서 여러 방법론 중 하나로 테스트베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북한의 동의와 안전장치 마련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북한이 스스로 최신 기술을 먼저 확산시키기 위해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남북 협력과 별개로 북한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신기술 테스트베드를 운영할 수도 있다.

또 남과 북이 개성이나 금강산 등 공동으로 협력하는 공간에 테스트베드를 운영할 수도 있다. 반대로 북한이 반발해서 테스트베드 이야기는 논의되지 못할 수도 있다. 

결국 북한에 첨단기술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것은 북한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그들은 남한의 테스트베드가 아니다. 설령 테스트베드를 만들더라도 그들의 테스트베드가 돼야 하며, 다시 남북의 테스트베드 돼야 남북이 오래 동안 협력할 수 있다.

강진규 기자  maddog@nk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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